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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메모2/김시천

최한호 2022. 6. 20. 19:43
사랑에 대한 메모 2

김시천

올 테면 육칠월 억수장마같이 와라
올 테면 장맛비 그친 뒤 쏟아지는 햇살처럼 와라
뜨겁게 와라 온몸을 불사르리라
검붉은 장미꽃처럼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사랑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
사랑은 어디서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봄비 지나는 바위틈에서
졸졸거리는 개울가에서
사랑은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다
때를 기다려 조금씩 고개를 내미는
제비꽃처럼, 민들레처럼
조금은 기다려야 사랑이다

뿌리를 내릴 때까지
새 잎이 돋을 때까지
조금은 수줍어야 사랑이다
그런 사랑이라야 상처를 보듬어 아프지 않게
어루만질 줄 안다

그래야 사랑이다
아프지 않아야 사랑이다


- 시집 < 풍등 > 고두미, 2018. P 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