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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진명

최한호 2019. 8. 25. 15:16

여행

 

이진명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

보라,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

첫여자도 첫키스도 첫슬픔도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안 돌아오는 여행을 간 것이다

얼마나 눈부신가.

안 돌아오는 것들

다시는 안 돌아오는 한번 똑딱 한 그날의 부엉이 눈 속의 시계점처럼

돌아오지 않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그때는 몰랐다

안 돌아오는 첫밤, 첫서리 뿌린 날의 새벽 새떼

그래서 슬픔과 분노의 흔들림이 뭉친 군단이 유리창을 터뜨리고

벗은 산등성을 휘돌며 눈발 흩뿌리던 그것이

흔들리는 자의 빛줄기인 줄은

없었다. 그 이후론

책상도 의자도 걸어논 외투도

계단도 계단 구석에 세워둔 우산도

저녁 불빛을 단 차장도 여행을 가서 안 돌아오고

없었다. 없었다. 흔들림이

 

흔들리지 못하던 많은 날짜들을 스쳐서

그 날짜들의 어두운 경험과 

홀로 여닫기던 말의 문마다 못을 치고 이제

여행을 떠나려 한다 

흔들리지 못하던 나날들의 가슴에 금을 그으면

놀라워라. 그래도 한곳이 찢어지며

시계점처럼 탱 탱 탱 피가 흐른다

 

보고 싶은 만큼, 부르고 싶은 만큼

걷고 걷고 또 걷고 싶은 만큼

흔들림의 큰 소리 넓은 땅

그곳으로 여행가려는 나는

때로 가슴이 모자라 충돌의 어지러움과

대가지 못한 시간에 시달릴지라도

멍텅구리 빈소리의 시계추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자꾸 틀린 말을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