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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의 여름/황현중

최한호 2019. 8. 4. 19:29

호반의 여름

 

황현중

 

어젯밤 내린 비로 호수가 가득합니다

이제는 잊었는가 싶었는데

물밀 듯 다가오는 벅찬 소식에

호숫가에 여린 나무 하나 떨고 있습니다

안개 낀 속눈썹에 산그림자 여미고

마지막 떨구지 못한 몇 방울 빗방울,

이별의 무게인 양 허공을 가누지 못합니다

물새 한 마리 차고 날아간 수면에

수런수런 어지러운 수련의 꿈들이

동그라미 속 동그라미 속 동그랗게

잊힌 얼굴처럼 떠오릅니다

추억의 발자국이 닿았던 곳마다

젖은 꽃들이 서늘하게 지고 있습니다

지는 꽃들의 숨가쁜 호흡처럼

뼛속을 파고드는 향기는

이제 마음껏 향기로울 수 없습니다

잊어도 살 것만 같았는데

어젯밤 내린 비로 호수가 다시 가득합니다

물새 한 마리 나뭇가지를 흔들고 떠났지만,

물밀 듯 울컥울컥 다가오는 소식에

나뭇가지 떨림은 멈추는 것을 잊었습니다

영원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나무처럼 오랫동안 나도,

그 자리에서 나를 멈추고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