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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산동 우체국/황규관

최한호 2018. 11. 3. 13:39

철산동 우체국

 

 

황규관

 

 

내가 너에게 편지 부치러 갈 때

한가한 우체국 입구에 나와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인사하던 우체국장 아저씨

꼭 나의 비밀을 아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나는 뚱뚱한 우체국 아가씨가 볼까봐

얼른 편지를 부치고,

그리고 얼마나 후회했던가

내 뜨거운 편지가

지구를 삼천댓 바퀴 돌다 도착했으면 싶었다

사랑한다는 구절에 세월의 곰팡이가 슨 채

이쁘게 늙은 너의 손주 손에 배달되어

노인대학 야유회 간 너를 기다리든지, 아니면

먼지가 더께로 낀 너의 창문을 기웃거리다

수취인 불명이 찍혀

바람이 내 무덤 앞 넓적바위에

일몰 직전 햇살처럼 쓸쓸히 반송해주길

나는 정말 얼마나 꿈꾸었던가

셔터가 내려진 철산3동 우체국

어둠 속에서 넋없이 바라보다 돌아선 날

내 방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오십억 광년쯤 떨어진 별에 들렀다 갈

편지를, 너에게 쓰기로 했다

 

 

「철산동 우체국」

내일을 여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