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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의 날/고진하

최한호 2018. 6. 26. 16:49

默言의 날

 

 

고진하

 

 

하루종일 입을 封하기로 한 날,

마당귀에 엎어져 있는 빈 항아리들을 보았다

쌀을 넣었던 항아리,

겨를 담았던 항아리,

된장을 익히던 항아리,

술을 빚었던 항아리들

하지만 지금은 속엣것들을 말끔히

비워내고

거꾸로 엎어져 있다

시끄러운 세상을 향한 시위일까,

고행일까,

큰 입을 封한 채

물구나무 선 항아리들

부글부글거리는 욕망을 비워내고도

배부른 항아리들,

침묵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른 항아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