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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대하여/정호승

최한호 2018. 6. 8. 10:01

나무에 대하여

 

   정호승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