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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긴 전화/도종환

최한호 2018. 6. 4. 20:38

끊긴 전화

 

 

도종환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말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 전화가 끊어졌다

 

누구였을까?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두근거리는 집게 손가락으로

내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달려와

 

여보세요.. 여보세요.. 두드리다

한 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그냥 돌아선 그는 누구였을까?

 

나도 그러했었다

나도 이 세상 그 어떤 곳을 향해 가까이 가려다

그만 돌아선 날이 있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항아리 깊은 곳에 비린 것을 눌러 담듯

가슴 캄캄한 곳에 

저 혼자 삭아가도록 담아둔 수많은 밤이 있었다

 

그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나 혼자만 서성거리다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을 허공에 던지다

단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돌아선 날들이 많았다

 

이 세상 많은 이들도 그럴 것이다 

평생 저 혼자 기억의 수첩에 썼다 지운 

저리디저린 것들이 있을 것이다

 

두 눈을 감듯 떠오르는 얼굴을 내리닫고 

침을 삼키듯 목끝까지 올라온 그리움을 삼키고 

입술 밖을 몇번인가 서성이다 차마 하지 못하고 

되가져간 깨알같은 말들이 있을 것이다 

한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