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나의 처소/천양희
최한호
2018. 2. 7. 13:46
나의 처소
천양희
말굽소리 사라지고 남은 들길을 옮겨가고 있다
고삐도 없이 안장도 없이
세월 위에 무엇을 얹으려는듯
오래전 나를 비켜간 풍경을 지우고
말없는 들에 손을 얹어본다
그까짓 잡풀같은 거 들풀같은 거
확 잡아채 멀리 던진다
들판이 아니었으면 바람의 내력을 풀지 못했으리
바람이 내게 풍물(風物) 하나를 가르치고 갔다
눈앞에 수락야산 동쪽벼랑, 어디가
조금 평평해진 것도 같다
마들은 도무지 정상을 모른다
모서리도 벼랑도 없는 들길에 서서
제 키를 그늘로 낮춘 나무를 본다
저 나무는
평생 누워있던 들이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벌떡 일어선 게 아닐까
일어서서 중심을 고집한 게 아닐까
생각해보니 수직이 없는 들에는 그늘이 빠져 있다
말의 발자국 거기서 끊겨 있다
끊어진 것은 끊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들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오늘은 내가 번개라도
돌을 쪼개듯 들을 쪼갤 수는 없다
그러니 들이여, 내가 원한 것은
호곡장(好哭場)인 나의 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