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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고정희

최한호 2017. 5. 29. 08:59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라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이면

나는 너에게로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 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 것이다.

 

「지리산의 봄」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