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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이문재

최한호 2017. 4. 4. 20:50

봄밤

     

 

이문재

 

잠복기가 일정치 않은 돌림병처럼

봄밤은 무섭다

떠난 사랑 돌아간 사람 늘 두 눈 부릅뜨고

가슴에 남아 사월의 힘 그대로 있구나

무서운 만큼 나를 못살게, 살게 해서

봄밤을 곁에 둔

팍팍한 길, 마른 발자국도 도장 파듯 걷게 한다

떠난 사랑 온몸에 퍼져

내 갈 길에도 흥건히 스며들어

나 곧 돌림병에 걸리겠구나

돌림병에 몇 바퀴 돌아가며, 눈썹 지워지고

지문도 뭉개지면서

길가에서 얻은 먹이의 종을 가려내

번잡한 곳을 지나서는 오래 양치를 해야 할 것이지만

살아왔었음이 더욱 두려워

봄밤 부옇게, 길바닥에 흔들리는 그림자

온몸으로 지우며 몸부림 같은 침묵으로

돌림병, 그 소문의 집 문을

두드릴 것이다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