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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명륜여인숙/오민석

최한호 2017. 3. 25. 00:00

그리운 명륜여인숙

 

오민석

 

잠 안 오는 밤 누워 명륜여인숙을 생각한다

만취의 20대에 당신과 함께 몸을 누이던 곳

플라타너스 이파리 뚝뚝 떨어지는 거리를 겁도 없이 지나

명륜여인숙에 들 때 나는 삭풍의 길을 가고 있음을 몰랐네

사랑도 한때는 욕이었음을 그래서 침을 뱉으며

쉬발, 당신을 사랑해요, 라고 말했었지

문학이 지고 철학도 잠든 한밤중

명륜여인숙 30촉 흐린 별빛 아래에서 우린 무엇이 되어도 좋았네

루카치와 헤겔과 김종삼이 나란히 잠든 명륜여인숙

혈관 속으로 알코올이 밤새 유랑할 때

뒤척이는 파도 위로 느닷없이 한파가 몰려오곤 했지

새벽 가로등 눈발에 묻혀갈 때 여인숙을 나오면

한 세상을 접은 듯 유숙의 종소리 멀리서 흩어지고

집 아닌 집을 찾아 우리는 다시 떠났지

푸른 정거장에 지금도 함께 서 있는 당신,

그리고 우리 젊은 날의, 그리운 명륜여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