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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쓰다/심재휘
최한호
2015. 7. 2. 14:22
우산을 쓰다
심재휘
어제는 꽃잎이 지고 오늘은 비가 온다고 쓴다
현관에 쌓인 꽃잎들의 오랜 가뭄처럼 바싹 마른
나의 안부에서도
우산이제는 빗방울 냄새가 나느냐고 추신한다
좁고 긴 대롱을 따라 서둘러 우산을 펴는 일이
우체국 찾아가는 길만큼 낯설 것인데
오래 구겨진 우산은 쉽게 젖지 못하고
마른 날들은 쉽게 접히지 않을 터인데
빗소리처럼 오랜만에 네 생각이 났다고 쓴다
여러 날들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많은 것들이 말라 버렸다고 비 맞는 마음에는
아직 가뭄에서 환도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쓴다
우습게도 이미 마음은 오래 전부터
진창이었다고 쓰지 않는다 우산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