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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ᆞ1/마종기

최한호 2015. 6. 4. 21:23

상처ᆞ1

 

마종기

 

 

1

내가 어느덧 늙은이의 나이가 되어

사랑스러운 것이 그냥 사랑스럽게 보이고

우스운 것이 거침없이 우습게 보이네

젊었던 나이의 나여

사고무친한 늙은 나를

초라하게 쳐다보는 젊은이여,

세상의 모든 일은 언제나

내 가슴에는 뻐근하게 왔다.

감동의 맥박은 쉽게 널뛰고

어디에서도 오래 쉴 자리를

편히 구할 수가 없었다.

 

2

그렇다.

젊었던 나이의 나여,

평생 도망가지 못하고 막혀 있는

하느님의 눈물 한 방울,

멀리 누워 있는 저 호수도

가엾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오래 짓누르던 세월의 불면증을

몇 번이나 호수에 던져버린다.

불면증 물려받은 호수가

머리까지 온몸이 젖은 채로

잠시 눈을 뜨고 몸을 흔든다.

연한 속살은 바람에 씻겨

호수의 살결이 틈틈이 트고

가는 다리까지 떨고 있다.

 

3

어디였지?

내가 어느덧 늙은이의 나이가 다 되어

호수도, 바람도, 다리도

대충 냄새로만 기억이 날 뿐,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가끔 귓속의 환청의 아우성.

아무도 우리를 말릴 수 없다는 상처의 나이의 아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