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호 2015. 5. 18. 21:51

 그 해 가을의 아랑

 

아랑의 원혼이었던가. 너는
그때, 핏발선 두 눈을 보며
난 너의 목을 눌렀다
영남루가 올려다 보이는 밀양읍의 여인숙
구석진 방안
사흘이나 나가지 않은 지독한 폐쇄는
종말을 원하고 있었다.

넌 피하지 않았다. 마치
내 손에 꽉 잡혔던 어릴 적의 화사(花蛇).
이미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던 그 순간.
넌 아랑을 보자고 했지. 굳게 다문 입.

강은 소리 내지 않고.
거대한 몸부림으로 돌아 누웠다
탈출의 끝에서 택하지 않은 죽음을 둔 채
우리는 나뉘었다.
그래 그건 운명이었다, 분명
하나되지 않았다면 이별도 없었다.

지리한 여름의 끝
밀양강은 어서 가라 등 떠밀고.
멀리 아랑이 손 흔들며 웃고 있었다.
어린 것 들이 .세상에.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었지만.

돌아온 그해 가을
사랑은 더 이상 뜨겁지 않아서
머리도 눈썹도 더 이상 깍지 않았다.
밤이면 수 없이 면도칼로 손목을 자르며
홀로 영남루 앞 강가로 달려갔다.
너 대신 아랑을 끌어안고
강을 거슬러 오르는 배신
아침엔 온 몸이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