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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동천에서 오래 서성이다/전동균

최한호 2015. 4. 19. 12:16

함허동천에서 오래 서성이다

 

전동균

 

으슬으슬한

저녁답, 가랑잎 부서지는 소리가

자꾸 발밑에서 들렸네

 

어두워지기 전에 강물은

푸른 회초리처럼 휘어졌다가

흉터 많은 내 이마를 후려치고,

아까보다는 훨씬 더 깊어져

불빛도 안 켜진 사람의 마을 쪽으로

그렁그렁 흘러갔네

 

―내 눈에는 왜 모래알이

서걱이는지 몰라, 눈을 뜰 때마다

눈 못 뜨게 매운 연기가

어디서 차오르는지 몰라,

 

잘못 살아왔다고, 너무

아프게 자책하지 말라고

갈 곳 없는 새들은

물에 잠긴 옛집 나무 그림자를 흔들며

석유곤로에 냄비밥을 안치는

獨居의 마음속으로 떼지어 날아들고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녁답, 나는

집에 안 가려 떼를 쓰는

새끼염소나 달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