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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심창만
최한호
2014. 12. 23. 14:15
편지
심창만
추신 뒤에 내리기 시작한 싸락눈은
차마 동봉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편지는 십이월의 갯벌처럼 무거워
그대가 오기도 전에 길을 젖게 합니다
우리가 멀리 젖은 새처럼 떠돌 때
하루는 더디고 일년은 이렇게 잔인하게 빠릅니다
전하지 못한 것들이 모여서
집을 이루고 하루가 갑니다
어제는 이웃의 무허가 루핑집이 불에 탔습니다
그 작고 허술한 집에 그렇게 많은 연기가 살고 있었습니다
기침 소리도 나눈 적 없는 이웃에
차마 탈 수 없는 사연들이 그렇게 많았습니다
무너지면서도 자꾸만 집을 지어 보이던 여윈 기둥들,
마지막 눈을 감으며 마당으로 내려오던 파리한 지붕,
전하지 못한 것들로
더디게 더디게 종일 제 몸을 태웠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날이 궂습니다
빗방울도 없이 다 적십니다
기침과 연기로도 전할 수 없는
이 미세함이, 고요가
어제 소방 호스에서 나오던 물줄기보다 더 사납습니다
언제쯤 그대 쨍쨍하게 젖어서
편지보다 먼저 불쑥 들어설 수 있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