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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주사/성선경

최한호 2010. 10. 10. 12:33

장진주사/성선경

 

살구꽃 피면 한 잔하고 복숭아꽃 피면 한 잔하고 애잔하기가 첫사랑 옷자락 같은 진달래 피면 한 잔하고 명자꽃 피면 이사 간 옆집 명자 생각난다고 한 잔하고 세모시 적삼에 연적 같은 저 젖 봐라 목련이 핀다고 한 잔하고 진다고 한 잔하고 삼백예순날의 기다림 끝에 영랑의 모란이 진다고 한 잔하고 남도의 뱃사공 입맛에 도다리 맛 들면 한잔하고 봄 다 갔다고 한 잔하고 여름 온다 한 잔하고 초복다름 한다고 한 잔하고 기울고 스러짐이 제 마음 같다고 한가위 달보고 한 잔하고 단풍 보러 간다고 한 잔하고 개천은 개벽이라 하늘 열린다고 한잔하고 입동 소설에 첫눈 온다고 한 잔하고 아직도 나는 젊다고 한 잔하고 아랫목에 뒹굴다 옛시를 읽으며 한 잔하고 신명대접한다고 한 잔하고 나이 한살 더 먹었다고 한 잔하고 또 한 잔하고 그런데

 

그런데 우리 이렇게 상갓집에서나 만나야 쓰겠냐고

선배님께 꾸중 들으며 한 잔하고

아직도 꽃 보면 반갑고

잔 잡으니 웃음 난다고

반 너머 기울어진 절름발이 하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