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호 2010. 10. 7. 13:59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198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