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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서울, 비행접시, 80년대 약전(略傳)

최한호 2010. 9. 30. 17:04

선데이 서울, 비행접시, 80년대 약전(略傳)

 

 권혁웅

 

 나의 1980년은 먼 곳의 이상한 소문과 무더위, 형이 가

방 밑창에 숨겨온 선데이 서울과 수시로 출몰하던 비행

접시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박철순보다 멋진 커브를 구사했다

상 위의 김치와 시금치가 접시에 실린 채 머리 위에서 휙

휙 날았다

 

 나 또한 접시를 타고 가볍게 담장을 넘고 싶었으

나…… 먼저 나간 형의 1982년은 뺨 석 대에 끝났다 나는

선데이 서울을 옆에 끼고 골방에서 자는 척했다

 

 1984년의 선데이 서울에는 비키니 미녀가 살았다 화중

지병(畵中之餠)이라 할까 지병(持病)이라 할까 가슴에서

천불이 일었다 브로마이드를 펼치면 그녀가 걸어나올 것

같았다

 

 1987년의 서울엔 선데이가 따로 없었다 외계에서 온

돌멩이들이 거리를 날아다녔다 TV에서 민머리만 보아도

경기를 일으키던 시절이었다

 

 잘못한 게 없어서 용서받을 수 없던 때는 그 시절로 끝

이 났다 이를테면 1989년, 떠나간 여자에게 내가 건넨 꽃

은 조화였다 가짜여서 내 사랑은 시들지 않았다

 

 후일담을 덧붙여야겠다 80년대는 박철순과 아버지의

전성기였다 90년대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되어 선데이 서

울이 폐간했고(1991) 아버지가 외계로 날아가셨다(1993)

같은 해에 비행접시가 사라졌고 좀더 있다가 박철순이

은퇴했다(1996) 모두가 전성기는 한참 지났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