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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문병란

최한호 2020. 12. 17. 21:10
​바람의 노래 / 문병란

어젯밤 알프스 넘어간 구름
오늘은 어느 항구에서
빈 술잔에 포도주를 채우는가

방랑길에서
바람이 가르쳐 준 말은
인생은 맹세하지 말라는 것

머물지 않은 바람은
저만치 고개를 넘으며
내일 쉴 곳을 정해놓지 않는다

​오늘은 오늘의 술을 마시고
내일은 내일의 술을 마신다
국경이 없어도 외롭지 않은
바람은 유유히 손을 흔든다

정주지 마라
꿈을 버려라
미워하지 마라 
미련을 남기지 마라

네가 앉았던 자리
네가 마셨던 잔
이제는 다른 사랑이 속삭이고
다른 잔을 마신다, 뒤돌아 보지마라

​바람이 앉았다 간 자리
오늘도 작은 풀꽃 하나 흔들리고 있다
이름이 무어냐고 묻지마라, 다짐하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