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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말/마종기

최한호 2020. 5. 10. 10:19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