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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좋겠네/이시하

최한호 2019. 8. 12. 18:07

그랬으면 좋겠네

 

이시하

 

애인이 빨리 늙어 소처럼 느리고 순해지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느지막이 일어나

찬 없는 밥을

우물우물 먹고 나서 산수유 꽃 피었드만,

그거나 보러 가지, 그랬으면 좋겠네

사람구경도 참 쏠쏠하구먼,

천천히 걷지 뭐, 그랬으면 좋겠네

강 언덕에 시름도

없이 앉아서는 노을빛이 퍽 곱구먼, 그랬으면 좋겠네

주름진 내 손을 슬쩍 당기며

거 참, 달빛 한 번

은근하네, 그랬으면 좋겠네

 

애인이 빨리 늙어 꾀병 같은 몸사랑은 그만두고

마음사랑이나 한껏 했으면 좋겠네

산수유 그늘 아래 누워

서로의 흰 머리칼이나 뽑아주면 좋겠네

성근 머리칼에 풀꽃송이 두엇 꽃아놓고

킥킥거렸으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허허 웃으며

주름진 이마나 굵적거리면 좋겠네

아직두 철부지 소녀 같다고

거짓 농이나 던져주면 좋겠네

한세상 흐릿흐릿 늙어가는 게 싫지는 않냐 물으면

흥, 흥, 콧방귀나 뀌었으면 좋겠네

 

 

 

 

《수주문학》 제6호

-시집 『나쁜 시집』(천년의시작,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