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여수/서효인

최한호 2017. 9. 6. 20:49

여수 

 

서효인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비를 머금은 공장에서

 

푸른 연기가 쉬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빨래는 내어놓질 못했다

 

너의 얼굴을 생각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있었다

 

이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바다가 풍기는 살냄새

 

무서웠다 버스가 축축한 아스팔트를 감고 돌았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눈을 감고

 

거의 다 깨버린 잠을 붙잡았다

 

도착 이후에 끝을 말할 것이다

 

도시의 복판에 이르러 바다가 내보내는 냄새에

 

눈을 떴다 멀리 공장이 보이고

 

그 아래에 시커먼 빨래가 있고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고 여수였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무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