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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 지나고/김경호

최한호 2017. 8. 7. 12:51

입추(立秋)지나고

 

 

김경호

 

이제는 안녕

가을비 재촉하는 늦은 퇴근길이여

바람은 더욱 세차게 우리의 목덜미를 흔들고

모여 있어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그 깊고 부드러운 어둠 속에서

이제 우리는

저 물방울처럼 흩어졌다가

더욱 낮은 곳에서 다시 만나는 것을

문득 낯선 골목을 지나치다가

빈 터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리 열심히 비 맞고 있는

옹기들을 보면

젖어드는 침묵의 빛남을 만나면

우리의 슬픔도 어느 날

흙으로 빚어 달구어 낸다면

결 고운 그릇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일까

이제는 안녕

늘 미결로만 남아있던 나의 퇴근길이여

우리가 떠나 온 빈 방에서는

오늘도 추억의 푸른곰팡이들이

무성하게 어우러지지만

이 밤도 탁상시계의 긴 태엽을 감으며

우린 굳게 잠들어야 하는 것을

춥고 먼 전선에서 어느 날

내가 돌려받은

그대 수취거절의 편지처럼

그렇게 가을은 다시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