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이문재
잠복기가 일정치 않은 돌림병처럼
봄밤은 무섭다
떠난 사랑 돌아간 사람 늘 두 눈 부릅뜨고
가슴에 남아 사월의 힘 그대로 있구나
무서운 만큼 나를 못살게, 살게 해서
봄밤을 곁에 둔
팍팍한 길, 마른 발자국도 도장 파듯 걷게 한다
떠난 사랑 온몸에 퍼져
내 갈 길에도 흥건히 스며들어
나 곧 돌림병에 걸리겠구나
돌림병에 몇 바퀴 돌아가며, 눈썹 지워지고
지문도 뭉개지면서
길가에서 얻은 먹이의 종을 가려내
번잡한 곳을 지나서는 오래 양치를 해야 할 것이지만
살아왔었음이 더욱 두려워
봄밤 부옇게, 길바닥에 흔들리는 그림자
온몸으로 지우며 몸부림 같은 침묵으로
돌림병, 그 소문의 집 문을
두드릴 것이다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