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 대하여
고 재종
어쩌려고 마음이 경각에 닿을 듯
간절해지는 황혼 속
그대는 기어코 사랑을 질문하고
나는 지그시 눈을 먼데 둔다
붉새가 점차 밀감빛으로 묽어가는
이런 아득함 속에서
세상은 다 말해질 수 없는 것
나는 다만 방금까지 앉아 울던 박새
떠난 가지가 바르르 떨리는 것하며
이제야 텃밭에서 우두둑 펴는
앞집 할머니의 새우등을 차마 견딜 뿐
점점 밝고 어두운 것이 서로 섞이는
이런 박명의 순순함 속에선
뒷산 능선이 그 뒤의 능선으로
어둑어둑 저미어 안기는 것도 좋고
저만치 아기를 업고 오는 베트남 여자가
함지박 위에 샛별을 인 것도 좀 보려니
그대는 질문의 애절함도 지우지도
안 지우지도 않은 채로 이제 그대이고
나는 들려오는 범종소리나
어처구니 정자나무가 되는 것도 없이
나는 시간이건 사랑이건
죽지도 않은 채 흠향한다
그렇지 않은가
삶은 아름다운가
이런 저녁
별들의 성좌가 거기 있을 뿐
먼데도 시방도 없이 세계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