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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 대하여/고재종

최한호 2017. 2. 12. 16:15

황혼에 대하여

 

고 재종

 

어쩌려고 마음이 경각에 닿을 듯

간절해지는 황혼 속

그대는 기어코 사랑을 질문하고

나는 지그시 눈을 먼데 둔다

붉새가 점차 밀감빛으로 묽어가는

이런 아득함 속에서

세상은 다 말해질 수 없는 것

나는 다만 방금까지 앉아 울던 박새

떠난 가지가 바르르 떨리는 것하며

이제야 텃밭에서 우두둑 펴는

앞집 할머니의 새우등을 차마 견딜 뿐

점점 밝고 어두운 것이 서로 섞이는

이런 박명의 순순함 속에선

뒷산 능선이 그 뒤의 능선으로

어둑어둑 저미어 안기는 것도 좋고

저만치 아기를 업고 오는 베트남 여자가

함지박 위에 샛별을 인 것도 좀 보려니

그대는 질문의 애절함도 지우지도

안 지우지도 않은 채로 이제 그대이고

나는 들려오는 범종소리나

어처구니 정자나무가 되는 것도 없이

나는 시간이건 사랑이건

죽지도 않은 채 흠향한다

그렇지 않은가

삶은 아름다운가

이런 저녁

별들의 성좌가 거기 있을 뿐

먼데도 시방도 없이 세계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