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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선에 기대어/남진우

최한호 2013. 5. 3. 15:30

폐선에 기대어

 

남진우

 

이른 아침 눈뜨면

머리맡에 배 한 척 밀려와 출렁이고 있네

찢긴 돛폭사이 말간햇살들

바삭거리며 부서져내리고 있네

그 배 문가에 기대어 놓고

바람이 부는 쪽으로 한없이 걸어가

하루 종일 이 일 저 일에 시달리다 집에 돌아오면

어디론가 가고 없는 배

잠들기 전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종이를 접어 배를 만드네

한 척 두 척 내 손을 떠난 배는

내 방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떠나가고

험한 물살에 시달리다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버리고

다시 누워서 눈을 감으면

이 밤도 저 멀리서 흔들리며 다가오는 배가 보이네

물살에 실려 그 배는 이리저리 떠돌다

잠에서 깰 무렵이면 어느덧 내 머리맡에 와 있네

배를 얻고 잃기를 되풀이하며

매일 낮 매일 밤 나 세상을 떠돌았네

닿을 길 없는 부두를 찾아 덧없이 헤매 다녔네

어느덧 늙고 지친 내가 눈을 뜨면

어김없이 머리맡에 와 나를 굽어보고 있는 낡은 배 한 척

부서진 뱃전에 머리 기대고

나 다시 떠나야 할 하루의 먼 길을 헤아려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