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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에서//마종기

최한호 2011. 12. 19. 16:27

 

과수원에서

마종기

 

시끄럽고 뜨거운 한 철을 보내고

뒤돌아본 결실의 과수원에서

사과나무 한 그루가 내게 말했다

오랜 세월 지나가도 그 목소리는

내 귀에 깊이 남아 자주 생각난다

 

ㅡ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땅은 내게 많은 것을 그냥 주었다

봄에는 젊고 싱싱하게 힘을 주었고

여름에는 엄청난 꽃과 향기의 춤

밤낮없는 환상의축제를 즐겼다

이제 가지에 달린 열매를 너에게 준다

남에게 줄 수 있는 이 기쁨도 그냥 받은 것

땅에서, 하늘에서, 주위의 모두에게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ㅡ 내 몸의 열매를 다 너에게 주어

내가 다시 가난하고 가벼워지면

미미하고 귀한 사연도 밝게 보이겠지

그 감격이 내 몸을 맑게 씻어주겠지

열매는 음식이 되고, 남은 씨 땅에 지면

수많은 내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구나

주는 것이 바로 사는 길이 되는구나

 

오랜 세월 지나가도 그 목소리는

내 귀에 깊이 남아 자주 생각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