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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회

최한호 2010. 11. 4. 16:26

 
민어회

 

안도현

집에서 멀리 나가 혼자 어둑하게 누워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당신은 나를 찾아 눈에 불을 켜고 밤 등대처럼 울지 모르겠으나
나는 곧장 목포 유달산 밑으로 가서 영란횟집 계산대 앞에 민어 한 마리로 누워 있겠다
벗겨 손질한 껍질 옆에다 소금 종지를 두고 내장을 냄비에 끓여 미나리도 반드시 몇 가닥 얹겠다
혹여 전화하지 마라
올 테면 연분홍 민어 살을 뜨는 칼처럼 오라
바다의 무릉도원에서 딴 복사꽃을 살의 갈피마다 켜켜이 끼워 둘 것이니
때로 살다가 저며 내고 발라내야 할 것들 때문에 뼈는 아리지
그래도 오로지 뼈만이 폭풍 속에 화석을 새겨 넣지
그러므로 당신은 울지 마라
소주병처럼 속을 다 비워낸 뒤에야 바닷가 언덕에 서서 호이호이 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