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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월의 살구나무 / 김현식

최한호 2010. 6. 5. 20:16

 
 
 


피아노 소리는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 밖엔 비가 내린다
기억나는 일이 뭐, 아무것도 없는가?

유월의 살구나무 아래에서
단발머리의 애인을 기다리며 상상해 보던
피아노 소리 가늘고도 긴 현의 울림이
바람을 찌르는 햇살 같았지

건반처럼 가지런히 파르르 떨던 이파리
뭐 기억나는 일이 없는가?

양산을 거꾸로 걸어놓고 나무를 흔들면
웃음처럼 토드득 살구가 쏟아져 내렸지

아! 살구처럼 익어가던 날들이었다 생각하면
그리움이 가득 입안에 고인다
피아노 소리는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 밖엔 비가 내린다

살구처럼, 양산의 가늘고도 긴 현을 두드리던
살구처럼, 하얀 천에 떨어져 뛰어다니던 살구처럼,
추억은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 밖엔 비가 내린다

 

 



출처 : 내남없이
글쓴이 : 굄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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